애니 · 기록

지옥락

한줄평

극락(極樂)을 좇다 옥(獄)이 되다

줄거리

죽지 않는 사형수 가비마루가 사면을 걸고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아 신선향으로 향한다. 사형수와 처형인이 짝을 이뤄 상륙한 낙원의 섬은, 곧 괴이가 들끓는 지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소감

불로불사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원해 온 인간의 욕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케바케겠지만 말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불로불사라는 건 과연 축복일까? 영약을 손에 넣어 더 오래 산다고 해서 행복할까? 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더 오래,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움직이는데, 정작 그 섬에서 영생을 이룬 존재들은 인간다움을 잃고 그저 계속 존재하기만 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끝까지 인간다우려 애쓰지만, 끝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 멈춰버린 시간인 듯했다.

사람은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지금의 나는 20대이다보니 '이건 내가 잘못했구나', '저건 고쳐야겠구나' 하며 살지만, 30대, 40대, 아니 50대가 되면 성장은 멈추고 지금까지를 바탕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불로불사했다면, 나 역시 어느 순간 저 괴물들처럼 오만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가장 살아 있어 보였던 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영생을 좇기보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으니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다"던 가비마루였다. 영원을 좇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유한한 것을 향해 돌아간다는 게 멋있었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돌아가느냐인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영생을 준다면 받을까? 재미있게 답하자면 "무조건 좋다"며 월월 짖겠지만,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글쎄다. 지금 내 삶은 유한하고, 내 목표도 언제나 유한했으니까. 끝이 있다는 것 역시 다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나 다음 생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그냥 나는 나인 채로 현재를 살아가고 그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자체로도 싸움 신은 화려하고, 굿즈 장사를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감도 안 올 만큼 캐릭터들이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사실 이 애니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나, 페이스북에 인스타 릴스처럼 짧게 볼 수 있는 영상이 뜨던 시절이었다. 거기서 지옥락 속 한 사무라이가 나비에게 손을 물리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제 팔을 잘라내고, 그 잘린 팔이 꽃이 되는 장면을 봤다. '나중에 꼭 봐야겠다' 싶었는데, 그걸 이제서야 1~2기까지 정주행했다.

애니야 흥미진진하고 중독적인 건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묘한 쾌락을 주지만, 지옥락은 내용이 유독 이색적이라 더 재밌게 봤다. 특히 서로를 지키던 악당 핑크 머리와 노란 머리가 끝내 민들레와 복숭아가 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지옥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이 되었다.

2기는 캐릭터가 부쩍 늘고 서사도 깊어졌지만, 흥미진진한 건 여전히 매한가지다. 극 중 한 닌자가 충성심이라며 부하에게 뒤를 맡기고, 노래를 부르며 제 목에 칼을 욱여넣었다 뺐다 하던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다. (이런 데 '인상 깊다'는 말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난다면 한번 보는 것도 정말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