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기록

살인마 잭의 집

한줄평

창조와 파괴는 한 손에서 예술로 태어난다.

줄거리

1970~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실패한 건축가이자 스스로를 예술가라 믿는 엔지니어 잭의 이야기다. 그는 강박(OCD)에 시달리며 완벽한 집 한 채를 짓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지만, 정작 그가 몰두하는 것은 12년에 걸친 연쇄살인이다. 영화는 그가 저지른 다섯 건의 '사건(Incident)'을 챕터처럼 나누어 보여주고, 잭은 버지(Verge)라는 보이지 않는 동행자에게 마치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듯 담담하게 살인을 회고한다. 서툰 초범에서 스스로를 'Mr. 세련됨'이라 칭하는 냉혹한 예술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영화는 인간의 잔혹성과 예술, 그리고 도덕의 경계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잭의 이야기는 현실을 벗어나 단테의 '신곡'을 따라 걷는 지옥으로의 하강으로 향한다.

소감

영화는 다섯 건의 살인(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챕터처럼 나눠서 보여준다. 첫 살인은 거의 우발적이고 서툴러서 잭조차 당황한다. 그런데 사건이 거듭될수록 그는 점점 능숙해지고, 대담해지고, 끝내는 살인을 하나의 연출이자 행위로 다루기 시작한다. 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이 풀려나오는데, 변화의 순간마다 자신을 변론하는 잭이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잭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집 한 채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남자다. 짓고 부수고, 다시 짓고 또 부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완성하는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죽인 시체들을 쌓아 올린 냉동창고 속의 집이다. 인간에게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공간인 집이, 가장 파괴적인 충동이 도달한 유일한 결과물이라는 것. 이것이 이 영화가 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강박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잭은 혹시 피 한 방울을 닦지 않았을까 봐 몇 번이고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그 병적인 결벽이 살인이라는 행위와 나란히 놓인 순간, 나는 예술가의 완벽주의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광기에 맞닿아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방향을 한번 잃으면 이렇게 끔찍한 것이 되기도 한다. 잭은 살인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그저 미친놈의 자기합리화처럼 들리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 집요함을 되묻는 것 같다. 파괴와 창조는 정말 반대말인가? 대성당을 세우는 손과 그것을 허무는 손은 다른 손인가. 가장 곱게 썩은 포도알에서 최고의 와인이 나오듯, 어떤 아름다움은 부패와 죽음을 재료로 삼아 피어나는 것은 아닌가. 내 심보로는 잭의 궤변을 반박하고 싶은데, 말이 워낙 깔끔해서 할 말을 잊는다. 잭은 작중 '왜 항상 남자 탓이냐'며 툴툴대는 대사가 있는데, 중간중간 끼어드는 폰 트리에 본인의 옛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이건 여론 속에서 기피 인물이 되어버린 감독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를 괴물이라 부르겠다면 그 괴물의 머릿속을 끝까지 다 보여주겠다는 태도가 작중 엿보였다. 잭은 이 영화에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이 잔혹함을 왜 끝까지 보느냐, 너의 도덕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냐고. 생각하기 나름으로 결말이 활짝 열려 있어, 보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답을 손에 쥐고 나오게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제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마지막 하강 시퀀스, 단테의 지옥을 한 계단씩 걸어 내려가는 그 장면은, 이 영화가 스릴러나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심판대에 올리는 종교화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 대변하듯 데이비드 보위의 Fame과 글렌 굴드가 두드리는 바흐가 참혹한 화면 위로 흐를 때, 그 부조화가 오히려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늘어놓으며 우리를 끝까지 몰아세웠던 잭 역시, 다른 무엇도 아닌 한 인간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이게 핵심인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울리는 Hit the Road Jack은, 이 영화에 이보다 더 맞는 결말이 있나 싶었다. 물론 이 영화를 쉽게 추천할 수는 없다. 잭의 살인 방식만 나열해 봐도 상당히 고어한 장면들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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