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내재해 있다.
―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랑 같이 가, 거기 어딘가에 우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개인적으로 내가 책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우물 속에 빠지기는 쉬울까? 정적으로 바라보면, 우물 속을 내려보지 않는 이상 우물에 빠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우물을 본다. 누군가는 우물을 피해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물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물의 깊이를 본다.
나오코에게 우물은 기즈키와의 과거일지 모른다. 그녀에게 그와의 과거에 대해 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현재라는 시점에서 보듬어주려고 한다. 지금 와타나베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즈키의 여자친구인 나오코가 아니라, 현재의 나오코니까.
우리가 가는 길에는 항상 우물이 존재한다. 깊게 파고들면 빠져버리는.
적어도 2025년까지 나는 살아오면서 나의 우물을 바라본 적이 없고, 항상 남의 우물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깊은 우물을 보게 되니까 생각이 많아졌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그제야 도망친 곳에도 나의 우물이 있었다. 나는 나의 우물의 모양도 모르고 우물에 빠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에 붙은 말이 중요하다. 나랑 같이 가. 우물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우물에 빠지기 쉽지 않다.
다음 대사에서 나오코는 자기를 잊을 것이냐고 묻는다. 이것이 과거를 바라보는 우물이다.
사랑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와타나베의 순수한 사랑처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우물을 본 적이 있었나요?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상실에 관하여
노르웨이의 숲은 죽음이라는 것을 다루며, 그로 인해 오는 상실에 대해 표현한 책이다.
죽음으로 사라지는 상실이 있고, 인간 자체의 내적 존재에서 사라지는 상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의 특징은 쉽게 잊히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과 버린 것은 다르니까.
와타나베는 여러 상실을 겪게 되지만, 대표적으로 네 가지 정도가 있다. 내용을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기즈키의 죽음으로 우정이라는 개념을 상실했을 때의 기분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아쉬울 따름이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떠나가는 친구를 막을 수 없음을 기즈키가 설명해준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있어 기즈키의 여자친구라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호감이 존재했던 인물이다. 기즈키의 행복을 위해 와타나베는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기즈키가 죽고, 나오코와 다시 만나게 된다.
나오코에게 와타나베는 사랑이라는 것을 심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와타나베에게 나오코는 ‘나오코’라는 인물 자체로서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오코의 생일날, 와타나베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되지만 기즈키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오코는 도망가게 되고 와타나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이후 이유가 나오지만, 나오코는 기즈키를 순수하게 사랑했다.
후에 나오코는 요양소에 가게 되고, 와타나베와 꾸준히 연락을 하며 와타나베가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좋은 추억도 쌓지만, 결국 나오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중간에 미도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미도리는 어떻게 보면 성적인 토크를 좋아하는 여성으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마음이 깊고 낙관적이어서 참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불타는 집에서 서로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과 대화가 있는데, 정말 아름답다.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미도리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죽음 장면에서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울면서 기다리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녀의 신념을 보여준다.
나오코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미도리는 “나를 선택해줘”에 가까운 인물이다.
레이코는 조금 나이가 있는 인물이다. 레이코는 상실을 겪고도 살아가는 사람에 가깝다.
자신의 지위와 사회적 매장이라는 마음 아픈 사건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간다.
나오코가 순수한 사랑에 대한 상실 그 자체라면, 레이코는 상실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상실은
상실이란, 누군가가 사라진 뒤에도 그 사람이 있었던 자리를 계속 바라보게 되는 일이다. 누군가는 바라볼 수도, 머물을 수도, 밀어낼 수도 있다.
미도리의 사랑에 대하여 나오코에게 사랑은 구원에 가깝다.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끌어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을 통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는 태도다.
하지만 미도리는 다르다. 그녀에게 사랑은 선택이고, 행동이고, 책임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에 가깝다. 곁에 서겠다고, 떠나지 않겠다고, 지금을 함께 살겠다고 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도리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나오코는 지나치게 환상적이다.
한 사람은 사랑을 통해 살고 싶어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을 하기로 선택한다.
어쩌면 이 차이가 와타나베를 가장 오래 흔들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후기 정리
이글은 참 매력적인 글이다. 내가 소설을 쓰게된 계기이기도하고 내가 생각나는 개념과 나의 일을 바탕으로 일기를 쓰게된 이유기도 하다. 글속의 표현들이 아름답고 나오는 캐릭터 하나하나 너무 개성이 넘쳐서 나는 진짜 눈물 콧물 짜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책을 읽고 내가 딱 하나 생각한 것이 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문장 정리
“나를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했고, 네 곁에 있었다는 걸 기억해줘.”
- 나오코
"나는 제대로 된 말을 할 수가 없어.”
- 나오코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 그냥 조금 익숙해질 뿐이야"
- 레이코
나를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것, 내가 존재했고, 이렇게 너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라도 기억해 줄래?
- 나오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 와타나베
"서른일곱 살,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 와타나베
반딧불이가 사라져 버린 다음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손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눈을 감으면, 그 작고 희미한 불빛은 짙은 어둠 속을 갈 곳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았다. 나는 어둠 속으로 몇번이나 손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 와타나베
나와 나오코가 가즈키라는 죽은 자를 공유했듯이 지금 나와 레이코씨는 나오코라는 죽은 자를 공유한 것이다.
- 문장 해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죽은자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기즈키는 열일곱인 채로, 나오코는 스물하나인 채로. 영원히.”
- 와타나베
"친절하고 부드러운 남자여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못해." "늘 어느 한구석은 냉철하고, 오로지 목마름을 느낄 따름이야."
- 미도리
"깜깜한 데 있으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어."
- 와타나베
"나한테 뭘 하든 상관없는데, 나 아프게는 하지 마. 인생에서 이미 충분히 아팠어. 너무 많이.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
- 미도리
"정말 나를 다시 보러올거야?" "내가 아무것도 못해줘도?" "당연하지"
- 와타나베, 나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