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고라… 돌아보면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난 성격이 칼같은 사람도, 개발을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도 아닌데 학교에 있는 동안 그렇게 보여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정말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PM도 적지 않게 해보고 인원 관리도 해보면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 같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친구는 직장 동료가 아니고 학교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회사는 철저한 이익집단이기에 필요 없는 역할이나 성과가 떨어지는 인원을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함께 의지해야 하는 친구이고 나중에도 보게 될 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내보내려 했던 마음, 선을 긋고, 칼같이 끊고, 혼자만의 세계를 지키려 했던 태도는 지금 떠올리면 아쉽고 조금은 부끄럽다. 당시에는 자신의 관계의 선을 구분하려는 사람들이 멋있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고, 필요 없는 관계를 단칼에 정리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에야 알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보통 혼자 남을 수밖에 없다. 난 고독을 혼자 즐기기에는 너무 약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너도 나도 똑같은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조급했고 늘 불안했다. 항상 늦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살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항상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바빴는지 모르겠다.
바야흐로 1학년 때 나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해본 적 없지만,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iOS 개발을 선택했다. 단지 멋있어 보였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Swift의 문법을 조금 공부했을 때 나는 실용적으로 언어를 이해하고 싶어 바로 친구들과 앱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라이브러리를 개발하였다. 학교에서 따로 밀어주는 분야는 아니기에 컨퍼런스와 해커톤, 외부 강의 등을 찾아다니며 정말 열심히 했다. 1학년 때 유독 기억이 남는 거라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고등학교를 소개하러 중학교에 찾아갔던 게 기억난다. 여름방학인가 학교에서 대덕대에서 무언가를 했는데 거기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누구개라는 프로젝트를 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학년 초반의 동아리에 목숨 걸고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떠오른다. 그리고 1학년 중반부터는 학교가 도구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의 대화 속에서는 서로의 실력을 재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뒤처지고 싶지 않아 개발과 프로젝트를 참 열심히 했다. 1학년 동안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도 한 편밖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잠도 줄이고 노는 것도 줄이고 오직 개발만 바라보던 시기였다. 근데 이제 와서 느낀 것은 잘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 꼭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선배님들과도 친해지고 딱 1학년다운 삶을 보냈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은 참 많은 도전과 후회가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개발 외적으로 삶을 많이 돌아보는 시기였다. 개발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키텍처와 디자인 패턴, 좋은 코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개발 외적으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사람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았다. 어쩌면 이 시기에 나는 개발 실력 이상의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는지 타인의 삶에 빗대어 내가 하려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꿈속에 사는 어린애 같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시기는 나에게 개발이라는 것은 참 민감하고 누군가가 침범하지 않았으면 했고 나라는 인물이 얼마나 속 좁고 자신을 과신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모두에게 참 고마우면서 참 미안했던 시기였다. 내가 너무 예민했었으니까.
조금 시기를 앞당겨보면 이 시기는 동아리의 선배가 되었다. 아직 많은 것을 모르는 내가 선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1학년 때 제대로 된 멘토링을 받지 못해서 그것에 대한 서운함이 커서 나의 후배가 되는 친구에게 내 모든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로는 보이지만 말로 못하는 컴포넌트를 만들기 위해 16시간 이상 구글링을 했었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스택 오버플로우나 GitHub의 iOS 맞팔도 안 되어있는 분에게 나의 문제를 찍어서 보낼 정도로 간절했다. (인도 앱 사이트에 가서 8만원짜리 코드를 살정도였으니까.) 그래서 후배에게는 고생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력이 많이 부족한 선배를 만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2학년에 내가 느낀 것은 나는 누군가를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치고자 하였다. 2학년 후반에는 1인 개발자가 너무 멋있어 iOS뿐만 아니라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조금씩 개발하고자 했다. 해당 언어들을 공부하다 보니 약간 억울했다. Swift에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백엔드와 프론트엔드에는 너무 잘 써져 있었다. 비유를 들자면 Swift에서는 사과를 사과라고 하지만 백엔드와 프론트엔드에서는 사과는 과일이고 빨간색이고 형체는 동그래 그리고 위에 꼭지가 있어 이런 느낌으로 설명이 너무 자세하게 되어있어서 억울했다. 그리고 내가 1학년 때 만들었던 라이브러리를 관리해보니까 드디어 2학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았다. 어떤 한국인 분과 외국인 분에게 내가 만들었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을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꿈에서 현실로 깨는 2학년이 지나고 난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되니까 비가 내렸다. 너무 많은 일들이 나를 치고 들어왔다. 내가 아직은 감당하기에 좀 버거웠나 보다. 나이는 이제 19살이라는데 사실 나는 15살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취업이 하기 싫어졌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달려왔다는 생각에 슬럼프가 더해졌다. 그래서 이때 난 사업이라는 도피처로 도피를 했을 수도 있다. 물론 회사에 다 떨어졌냐? 그건 또 아니었다. 물론 내가 넣었던 기업들은 3년 차 또는 그에 준하는… 실력을 뽑는 기업들이었다. 학교에 있는 기업들은 잘 보지도 않았다. 근데 항상 1차 또는 2차가 붙더라도 "나는 이제 이 회사의 부품인가?"라는 슬럼프가 제대로 왔다. 그래서 잘되다가도 나의 의지가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적당히만 하자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운이 좋게 회사에 합격해도 난 학교 측에 안 간다라고 의사를 정했다. 그래서 욕까지는 아니어도 날 포기하는 듯한 말들을 참 많이 들었다. 1, 2학년 취업에 목숨 걸던 애가 어느 순간부터 취업을 하기 싫다니까 선생님들도 어이가 없을 법하다. 그러다가 나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고 1학년 때 내가 썼던 메모를 발견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간절해 보이는 나의 편지로 나는 다시 취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해보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회사에 들어가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불리 생각을 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비가 그치고 눈보라가 찾아왔다. 분명 포근한 눈을 내가 눈보라로 만들어버린 것 같은데 이 일에 대해서는 너무 미안하다.
이런 심리 속에서 나는 아침에 기숙사 침대에서 일어나면 좀비처럼 노트북을 켜고 개발 면접 공부와 기술 블로그를 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때는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슬픔도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좀비 같은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연히 친해졌지만 든든한 친구가 풀스택 개발을 하는 회사를 알려줬다. 학교에서는 이미 나를 포기한 상태라 나에게 권유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가 그 자리를 양보해줬다. 정말로 고마웠다.
그렇게 면접을 봤고, 회사는 잡탕처럼 이것저것 해왔던 나를 좋아했다. 이 나이에 많은 경험을 해본 게 강점이라고 하며 거의 프리패스를 받고 입사하였다. 처음에는 회사 프로세스를 몰라 어려웠지만, 입사 직후 Maven + Spring 기반 프로젝트를 Gradle + Spring Boot로 전환한 성과를 냈고 상무님의 추천으로 정규직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대학교를 무료로 보내줬고 병특도 주기로 약속했었다. <결국 병특은 받았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쉬웠던 거는 아니었다. 당시 상무님에게 "일을 좋아하는 애"라는 프레임이 생기자 업무가 매일 산처럼 쌓였다. 어찌저찌 열심히 하니까 안 되는 건 없었다.
그렇게 졸업식이 되어 친구들을 보러 학교에 갔을 때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기숙사에서 스트레스로 지새웠던 밤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에게 화를 냈던 순간들, 후배들보다 결과를 우선시했던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조금 두려웠던 거는 친구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지였다. 항상 바빴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고 항상 뭔가에 쫓기던 나를 어떻게 보았을지가 두려웠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말해주기를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나에게 불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네가 열심히 했기에 자기들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다시 한번 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감 쌤에게 안 들키려고 노트북과 폰을 내지 않고 12시에 자는 척하다 12시 30분에 일어나 밤새 개발했던 날들. 친구들이 하는 게임을 몰래 하려고 폰을 숨겼던 날들. 밤에 몰래 친구들 방으로 타방하던 날들. 선배님들 방에 가서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며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룸메가 자든 말든 떠들던 날들. 반대로 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떠들어댄 날들도 있었다. 기숙사에서 집이 너무 가고 싶어 스트레스받았던 날도 많았고, 의무 귀가 날 집에 갈 때 검정치마 노래를 들으며 싱글벙글했던 날도 있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 이상할 정도로 행복했던 날도 있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밖에 나가 붓츠시나 맘스터치에서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놀며 스트레스를 풀던 날들도 있었다. 혼자 다른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면서도 따뜻했던 날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한 추억이다.
억울했던 순간, 분노했던 시간, 성장하려고 발버둥쳤던 시간, 자존감이 무너졌던 날들, 그리고 웃고 떠들고 안심하고 사랑했던 순간들까지.
확신으로 시작해 성장을 거쳐 방황으로 끝난 3년이었지만 하나도 헛된 시기는 없었다. 조급했던 나도, 불안했던 나도, 결국은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
사실 이정도 이야기로만 해도 내용이 적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요소들이 붙어있다.
그리고 내가 할말은 아니긴 하지만 학교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결국 학교를 욕보이면 나의 중학교 시절 나의 선택을 욕보이는거니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갈거냐고 묻는다면 난 무조건 돌아간다고 어떤 방법을 써야 돌아갈 수 있냐고 간절하게 물어볼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서 하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내고 싶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너무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난 그 무엇도 바꾸고 싶지 않다. 전부 내가 원했던 것들이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