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 기록

100미터.

한줄평

그 짧은 순간을 그토록 달렸건만,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렸던가

줄거리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뛰어난 토가시는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 친구와 자신의 자리를 얻어왔다.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달리던 전학생 코미야에게 토가시가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두 사람은 방과 후 함께 연습하는 사이가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정상급 선수가 된 토가시는 계속 이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기록을 향해 달려온 코미야와 다시 트랙 위에서 마주한다.

소감

과연 내가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좋아했던 일이 언젠가는 잘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 AI를 활용하든, 직접 코드를 작성하든, 그렇게 개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5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개발을 진심으로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무언가를 끝내 완성했다는 성취감,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는 뿌듯함,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아마 그런 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그때처럼 웃으며 개발했을까. 물론 지금의 개발이 마냥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에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똑똑한 친구들을 동경했다. 나보다 개발에 재능이 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구현해 내는 친구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했고, 포트폴리오를 쌓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 것만 같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앞서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는 친구 한 명과 스타벅스에 하루 종일 앉아 우리만의 아키텍처를 만들겠다며 허황된 꿈을 늘어놓곤 했다. 당장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나누며, 언젠가 그런 일을 하는 개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실제로 회사의 고도화 팀에 들어갔다. 그토록 바라던 일을 어느 정도 이루게 된 셈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어릴 적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 부러워했을 텐데, 정작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내 앞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나보다 빠르게 배우고, 누군가는 더 멀리 나아가고, 또 누군가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 왔던 것들을 너무나 쉽게 이뤄 낸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말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달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의 속도만으로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버스조차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영화 《100m》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달린다. 각자가 바라보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닿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간다. 그 모습은 분명 멋있다. 누군가의 노력은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때로는 다시 달려 보고 싶다는 동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어린 시절 천재라 불리던 유망주가 어른이 되어서도 빛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어린 시절 아무런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 끝없는 노력 끝에 누구보다 멀리 나아갈 수도 있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사람조차 시간이 흐르면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이 바라보던 목표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계속 달리고, 누군가는 멈춰 서고, 누군가는 달리는 이유조차 잊어버린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어째서 이런 말들이 나에게는 이토록 무겁게 다가오는 걸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나 역시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고 싶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멈춰 서면 지금의 내가 전부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내가 꿈꾸던 모습과 현실의 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계속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100m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발선에 서는 순간도 다르고, 타고난 재능도 다르고, 달리는 이유도 다르다. 누구는 처음부터 앞서 나가고, 누구는 한참을 뒤처진 채 달린다. 그런데 결국 100m의 승부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누군가는 몇 년을, 누군가는 자신의 청춘 전부를 바친다. 생각해 보면 삶도 참 이상하다. 길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짧다. 어린 시절에는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꿈을 이루면 행복할 줄 알았고, 남들보다 잘하게 되면 만족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목표가 나타나고, 그 목표에 닿을 즈음에는 이미 나보다 멀리 달려간 사람들이 보인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얼마나 달려왔는지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지금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려왔을까. 노력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나는 달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뒤처진 나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그저 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짧은 100m조차, 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어 본 적이 있는가.

댓글 ·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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