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옷장에는 몇 년째 입지 않은 옷이 걸려 있고, 서랍에는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나씩 꺼내다 보면 처음에는 제법 과감하다. 그런데 꼭 몇 개쯤에서 손이 멈춘다. 이건 언젠가 입을 것 같고, 저건 쓰지는 않지만 누가 준 거고, 또 하나는 아직 너무 멀쩡하고. 그렇게 이유를 하나씩 붙이다 보면 버리려고 꺼낸 물건들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물론 다시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몇 년째 입지 않은 옷을 갑자기 다음 계절에 꺼내 입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고, 서랍 가장 안쪽에서 잊혀 있던 물건이 어느 날 대단히 필요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물건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옷 하나를 꺼냈을 뿐인데 그날의 날씨가 떠오르고, 주머니에서 나온 오래된 영수증 한 장에 한동안 잊고 지내던 장소가 되살아난다. 별것 아닌 물건을 손에 쥐고 있다가 노래를 들을 때보다 선명하게 어떤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억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정작 기억하려고 애쓸 때는 잘 떠오르지 않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옷장을 열었을 때 불쑥 찾아온다.
어쩌면 물건은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해서 샀거나 예뻐서 골랐거나, 누군가 건네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사는 동안 조금씩 다른 것들이 묻는다. 처음 입었던 날이 생기고, 유난히 자주 꺼내 입던 계절이 생기고, 그걸 입고 많이 웃었던 하루가 생긴다. 그렇게 추억이 한 겹씩 포개지고 나면 물건에는 이유가 생긴다. 처음에는 그냥 옷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그날의 날씨까지 품고 있고, 별생각 없이 받은 물건 하나가 그때의 말투와 표정까지 데리고 온다. 그래서 같은 티셔츠인데도 하나는 별 고민 없이 봉투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는 손에 든 채 한참을 서 있게 만든다. 버리기 어려운 것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은 특히 그렇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지금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아도 좀처럼 손에서 놓이지 않는다.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내 손에 처음 들어오던 순간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금의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 아직 책상 위에 놓여 있는가 하면, 매일 보는 사람에게 받은 것은 어느 서랍에 넣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사람보다 물건이 더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정리를 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순서로 기억하게 된다. 먼저 물건을 발견하고, 그다음에야 그 물건이 있던 날을 떠올린다. 오래전의 말 한마디가 따라오기도 하고,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뒤늦게 끼어들기도 한다. 물건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 앞에서 자꾸 다른 때로 돌아간다.
옷장에는 그런 옷도 있다. 한때는 거의 매일 입었는데 어느 날부터 손이 가지 않는 옷. 싫어진 것도 아니고 어디가 망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다른 옷을 먼저 꺼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미뤄지는 사이 몇 번의 계절이 지나버린 것이다. 정리를 하다 그런 옷을 발견하면 한 번 입어본다. 여전히 잘 맞는다. 그러면 오히려 고민이 깊어진다. 안 맞으면 정리하면 되고 망가졌으면 보내면 되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보내려면 이유를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다시 옷걸이에 건다. 다음에는 입겠지, 다음 계절에는 손이 가겠지. 그렇게 옷장 한쪽에는 다음을 기다리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물건마다 남아 있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좋아서, 익숙해서, 아까워서.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가끔 꽤 유용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있는지도 잊고 살다가 막상 필요해지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도 있다. 언젠가 쓸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도 있다. 개중에는 조금 이상한 물건도 있다. 내가 먼저 찾지는 않으면서 계속 가지고는 있는 것. 없어도 당장 불편할 일은 없는데, 그렇다고 없어지는 것은 내키지 않는 것. 왜 아직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지다가도, 정작 버리려고 하면 이유가 갑자기 많아지는 것.
반대로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는 것도 있다. 별다른 쓸모가 없다.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리할 때면 그것은 고민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집어 들었다가 그냥 다시 원래 자리에 놓는다. 책상 위의 작은 장식품일 수도 있고, 오래된 컵 하나일 수도 있다. 왜 남겨두느냐고 물으면 길게 설명할 말이 없다. 그냥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물건이 좋다. 무엇에 쓸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의 이유를 매번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가끔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집 안의 모든 물건을 그런 마음으로 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간에는 끝이 있다. 옷장은 넓어지지 않고 서랍에도 마지막 칸이 있다. 계속 밀어 넣다 보면 어느 날은 옷걸이 하나를 걸기 위해 양옆을 억지로 밀어야 하고, 서랍 하나를 닫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정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물건이 많다는 사실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정리를 시작한다. 옷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한 번씩 펼쳐보고 주머니도 뒤져본 다음 봉투를 하나 가져온다. 처음에는 쉽게 들어간다. 한 벌, 두 벌. 그런데 봉투가 차오를수록 손이 다시 느려진다. 아까 넣은 것을 도로 꺼내 한 번 더 입어보고, 거울 앞에 서보기도 한다. 정리란 이상하다. 분명 공간을 비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물건 하나하나의 사정을 듣고 있다. 그래도 결국 봉투의 입구를 묶는다.
집 앞에는 의류수거함이 있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인데 봉투를 들고 서면 괜히 커 보인다. 그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별것 없다. 입구를 열고, 봉투를 넣고, 손을 놓는다. 그리고 닫는다. 그게 전부다. 몇 년 동안 옷장 한쪽을 차지하던 것들이 내 손을 떠나는 데에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넣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마음을 바꿀 수 있었는데, 손을 놓는 순간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원하면 다시 옷장에 걸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누군가 다시 입게 될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 오래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보이지 않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가끔은 그것이 조금 무섭다.
그래서 봉투를 들고 그 앞까지 갔다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다시 가져온다고 갑자기 입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옷장에 걸어놓고 또 몇 달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날은 그냥 다시 걸어두고 싶은 것이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 무엇이 아직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쓸 때가 아직 남아 있는 건지, 보낼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건지. 어쩌면 그 둘은 전혀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갈 때는 봉투 하나 때문에 한쪽 손이 무거웠는데 돌아올 때는 이상할 만큼 가볍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면 가벼워진 손보다 빈자리가 먼저 보인다. 조금 전까지 옷이 걸려 있던 곳에 틈이 생기고, 서랍 안에는 손바닥 하나쯤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분명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리한 것인데, 막상 생기고 나면 한동안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없애려고 내보낸 것인데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오래 눈에 들어온다. 괜히 옷장을 한 번 더 열어보고, 치울 것도 없는 서랍을 다시 열어본다. 혹시 내가 너무 쉽게 넣어버렸나 싶어 수거함 쪽을 생각할 때도 있다. 이미 손을 놓았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에도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정확히 무엇이 있던 자리인지 알았는데 어느새 그것조차 흐릿해지고, 다른 옷이 그 옆으로 조금씩 밀려오고,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날 다른 옷의 주머니에서 영수증 한 장이 나오거나 책상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물건 하나를 발견하면, 이미 비워냈다고 생각했던 자리가 잠깐 다시 열린다. 물건은 줄었는데 기억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정리를 할수록 무엇이 있었는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비워내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내보내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는 그것이 있던 자리까지 남는다는 걸 자꾸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런 자리가 하나둘 늘어난다. 몇몇은 금방 익숙해지고 몇몇은 오랫동안 눈에 밟힌다. 아주 오래 지나면 어느 것이 무엇의 자리였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옷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날도 있다. 물건은 분명 줄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계속 모든 것을 가지고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은 안다. 옷장에도 끝이 있고 서랍에도 끝이 있으니까. 언젠가는 또 하나를 꺼내야 하고, 봉투를 묶어 집 앞까지 걸어가야 한다. 아마 다음에도 수거함 앞에서 잠깐 멈출 것이다. 한참을 들고 서 있다가 도로 가져올 수도 있고, 결국 손을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괜히 옷장을 열어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남아 있는 이유들은 여전히 가지런하지 않고, 분명 좋아했던 것이 어느 날 문득 손에서 놓이기도 한다. 그래서 정리를 하고 나서도 옷장은 완전히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몇 벌은 여전히 저마다의 이유를 달고 같은 자리에 걸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전에 없던 틈이 조금씩 늘어나 있다.
오늘도 옷장 문을 열고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꺼내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 바라보고 싶었다. 오래 남아 있는 것과 이제는 없는 것과 아직 어디에 둘지 정하지 못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보고 있다가 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가끔은 물건 하나가 사라진 것뿐인데, 집이 전보다 조금 더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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